공연 용역 재하도급, 구두 약속만 믿었다가 소송까지 간 사연
저는 법원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억울합니다.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됐고, 법적으로는 제가 옳았습니다. 저처럼 재하도급 구조 속에서 구두 약속 하나만 믿고 돈을 먼저 내준 분이 또 나오지 않도록 이 이야기를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공연 하나를 맡았습니다
몇 년 전, 저는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공연 용역을 수주했습니다. 공연 기획과 연출 총괄을 맡는 계약이었습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공공기관(주관) → 대학 산학협력단(프로젝트 매니저) → 저희 회사(공연 기획·연출) → B업체(악기 대여·운용)
저희는 공연 전체를 총괄하는 위치였습니다. 무대, 조명, 음향, 영상, 악기까지 모든 하위 용역을 조율하는 역할이었죠. 악기 대여 파트는 전문 업체인 B업체에 맡겼습니다.
문제는 돈의 흐름이었습니다. 발주처가 공공기관 산하 조직이다 보니 예산을 항목별로 사전 승인받아야 했고, 계약서에는 재하청 금지 조항까지 있었습니다. 결국 산학협력단은 저희 회사에만 돈을 줄 수 있는 구조였는데, 전체 제작비를 먼저 내려주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B업체는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산학협력단에 제가 직접 견적서 넣겠습니다. 거기서 입금되면 그때 정산할게요. 지금은 선금만 주시면 됩니다."
실제로 산학협력단이 B업체 앞으로 발행된 견적서를 받아들였고, 공연이 끝난 뒤 B업체 계좌로 직접 입금했습니다. 계획대로였습니다. B업체가 돈을 받는 것까지는…
왜 믿을 수밖에 없었나
왜 그걸 믿었어요?
소송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도 답답합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B업체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전체 팀 회의였습니다. 제가 직접 수소문한 게 아니라, 이미 프로젝트 구조 안에서 역할이 정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견적서도 받았습니다. 드럼, 베이스 앰프, 기타 앰프, 키보드, 피아노까지 품목별로 정리된 공식 견적서였고, 금액도 업계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수개월을 함께 일했습니다.
리허설 일정, 출연자 악기 세팅, 사운드 체크, 팀별 과업 지시서까지. 관련자 전원이 함께하는 단체 채팅방에서 매일 소통했고, B업체 대표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파일을 올리고, 일정을 확인하고, 현장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무책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연도 실제로 잘 끝났습니다.
4일간의 공연. B업체는 약속한 악기를 모두 세팅했고, 리허설부터 본 공연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도 제대로 했고, 오래 같이 일한 사람인데. 설마 돈 문제로 이렇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게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입금 확인 직후부터 달라졌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했습니다. 부가세 포함 총 528만 원. B업체 대표는 "산학협력단에서 입금되는 대로 바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산학협력단에서 B업체 계좌로 입금이 완료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바로 연락했습니다.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남겼습니다. 읽었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자 아예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입금 전까지는 연락이 됐습니다. 입금 후부터 두절됐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인지, 받고 나서 마음이 바뀐 건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 저한테는 결과가 같았습니다.
소액사건심판으로 이행권고결정을 받았습니다
막막했지만,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는 절차가 따로 있었습니다.
청구금액이 3,000만 원 이하인 민사사건은 소액사건심판 절차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사법보좌관이 검토 후 피고에게 이행을 권고하는 결정을 내리고, 피고가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깁니다. 저의 청구금액은 528만 원이었으니 대상이 됐습니다.
B업체 대표는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고 결정이 확정됐습니다.
소송에서 결정적이었던 증거
세금계산서 — 528만 원 청구 사실의 직접 증거
견적서 — 계약 내용과 금액 확인
문자·카카오톡 메시지 — 입금 요청과 연락 두절 기록
특히 단체 채팅방 대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B업체 대표가 "산학협력단에서 입금되면 갚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내용이 남아 있어, 약정의 존재를 입증하는 자료가 됐습니다.
법원에서 이겼는데 왜 억울한가
결정문이 손에 들어온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구나.'
이행권고결정은 자동으로 돈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피고가 스스로 갚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따로 신청해야 합니다. 피고의 재산을 파악하고, 압류 신청을 하고, 그 과정에서 또 시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거기다 B업체 대표는 소송 내내 연락이 없었습니다. 연락 두절에 실거주지도 불분명한 상대를 추적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옳고 그름은 법원이 판단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판단이 곧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송에서 이긴 뒤에도 여전히 쫓아다녀야 하는 현실이, 더 지쳐버리게 만들었습니다…
528만 원을 받으려고 이 모든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소액이라는 이유로 혼자 감당하려 했던 게 가장 큰 손해였습니다.
소액사건심판은 절차가 간단하지만, 상대가 잠적한 경우 증거 구성과 강제집행 준비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처음부터 법률 전문가와 함께 전략을 짰다면 소송 이후 집행 단계에서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을 겁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
재하도급 구조에서 돈을 먼저 줬는데 상대방이 갚지 않는다면, 기다릴수록 불리합니다.

1단계 : 증거 확보
계약서, 견적서, 세금계산서, 입금 내역은 물론 문자·카카오톡·이메일 대화 전부 스크린샷으로 저장해 두십시오. 상대방이 "주겠다", "받으면 드리겠다"고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됩니다. 나중에 필요 없으면 버리면 되지만, 없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2단계 : 내용증명 발송
청구 금액, 지급 기한, 미지급 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명시해 발송하세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심리적 압박과 채권 청구 사실 입증,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3단계 : 지급명령 또는 소액사건심판 신청
반응이 없다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마세요. 청구금액이 3,000만 원 이하라면 소액사건심판을, 상황에 따라 지급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두 절차 모두 변호사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만 상대방이 연락을 끊었거나, 재산 파악이 어렵거나, 구두 약정만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판결을 받아도 실제로 돈을 받아내는 강제집행 단계까지 설계해야 진짜 해결입니다. 금액이 작을수록 혼자 버티다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디 맘 고생하지 마시고 전문가와 상담부터 해보시길 바랍니다.
재하도급 계약 전 반드시 확인할 것들
앞으로 재하도급 계약을 맺을 때는 반드시 계약서에 아래 내용을 명시하십시오.
지급 주체와 금액 누가 얼마를 주는지 명확히
지급 조건 발주처 입금 여부와 무관하게 지급 의무 명시
지급 기한 구체적인 날짜
미지급 시 지연이자율
특히 "발주처에서 받으면 드리겠다"는 조건부 약속은 계약서에 그대로 쓰면 안 됩니다. 발주처 사정과 무관하게 하수급인이 지급 의무를 진다는 내용으로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재하도급 구조는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닙니다. 공연·영상·이벤트 업계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구조 안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돈의 흐름이 어떻게 설계돼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비했어야 했습니다.
그걸 몰랐던 대가가 528만 원이었고, 그보다 더 값비싼 시간과 에너지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됐는데 상대방 재산을 어떻게 찾나요?
판결문이나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돼도 상대방의 재산을 저절로 알 수 없습니다.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하면 채무자를 법정에 출석시켜 재산 목록을 직접 제출하게 할 수 있습니다.
채무자가 출석을 거부하거나 허위 진술을 하면 감치 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재산명시 절차를 먼저 진행한 뒤, 제출된 재산목록만으로 채권 만족에 부족하거나 채무자가 불출석·허위 진술한 경우에는 재산조회신청을 추가로 할 수 있습니다.
Q2. 구두 약속만 있고 계약서가 없어도 소송에서 이길 수 있나요?
계약서가 없다고 소송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법원은 계약서 외에도 카카오톡·문자·이메일 대화, 견적서, 세금계산서, 입금 내역, 통화 녹음 등 다양한 간접 증거로 약정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다만 계약서가 없는 경우 상대방이 "그런 약속을 한 적 없다"고 부인하면 입증 부담이 커집니다. 특히 금액을 언급하거나 지급을 약속한 메시지가 남아 있다면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평소 금전 거래와 관련된 대화는 절대 삭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Q3. 상대방이 폐업하거나 재산이 없으면 돈을 못 받는 건가요?
상대방이 개인사업자로 폐업했다면 법인과 달리 사업자와 개인이 동일인이므로, 개인 재산(부동산, 예금, 차량 등)을 대상으로 강제집행이 가능합니다. 법인이라면 원칙적으로 대표자 개인은 법인의 채무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다만 법인이 사실상 대표자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법인 형태가 법적 책임 회피 수단으로 남용된 경우에는 법인격 부인론을 근거로 대표자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단, 이 법리는 판례상 요건이 엄격해 일반적인 용역대금 미지급 사안에서 인정받기 어렵고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재산이 실제로 없는 경우라면 즉시 집행이 어렵더라도, 판결 확정 후 소멸시효는 10년이므로 그 기간 안에 상대방의 재산 변동을 추적해 집행 시점을 늦출 수 있습니다. 섣불리 포기하기 전에 재산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법무법인 이현은 용역대금 미지급, 재하도급 분쟁, 공연·이벤트 업계 계약 관련 사건을 다수 수행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계신다면 먼저 상담부터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