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대금 미지급 판례: 계약한적 없다는 원청업체? 약 3천만원 인정
공사를 다 끝냈는데 원청업체가 "그 계약은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구분 | 금액 |
|---|---|
청구액 | 3,792만원 |
인용액 | 2,926만원 |
결론을 가른 것은 법리보다 날짜였습니다. 서울 소재 관공서 신축공사에서 설비와 미장 공사를 맡은 하도급업체의 사건이고, 이야기는 계약보다 한 달 앞에서 시작합니다.

2023년 4월, 상대는 이미 법정관리 중이었습니다
원청업체는 계약을 맺기 전에 이미 법정관리(간이회생절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4월 14일 개시 등기까지 끝났습니다. 계약 41일 전입니다.
하도급업체는 법인등기부를 떼보지 않았습니다. 기존 업체가 공사를 포기하면서 급하게 들어간 자리였고, 현장에서 매일 마주치던 사람이 부탁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5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
5월 25일 하도급계약 두 건, 합계 1억 670만원에 계약이 맺어졌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은 현장에 매일 나오던 정씨였습니다. 명함에 '이사'라고 적혀 있었고, 계약도 대금 청구도 모두 정씨를 거쳤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이렇습니다. 정씨는 등기이사가 아니었고, 위임장도 없었으며, 원청업체의 현장소장은 따로 있었습니다. 계약서는 권한 없는 사람이 회사 이름으로 쓴 문서였습니다.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네 번의 입금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원청업체 명의로 돈이 들어왔습니다.

시기 | 입금액 |
|---|---|
5월 | 450만원 |
6월 | 2,060만원 |
7월 | 2,948만원 |
8월 | 2,286만원 |
합계 | 7,744만원 |
계약금액의 약 73%가 넉 달에 걸쳐 네 번 나뉘어 들어왔습니다.
이때는 아무도 이 입금 내역이 승부처가 될 줄은 몰랐겠죠. 그냥 공사 진행된 만큼 받는 대금, 기성금이었습니다.
2023년 8월과 9월, 견적서 두 장
공사 도중 추가 작업 요청이 세 차례 있었습니다.
항목 | 금액 |
|---|---|
미장·방수 누락분 | 333만원 |
현관 트렌치 시설 | 391만원 |
화장실 공사 | 142만원 |
합계 | 866만원 |
세 건 모두 견적내역서만 오갔습니다. 변경계약서도, 확인서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변경계약서가 가장 확실하지만 현장에서 매번 쓰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문자나 메신저로 승인을 받아두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누구에게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이 권한 없는 사람에게 받은 승인은 후에 부인당할 수 있습니다. 대표이사나 위임장을 가진 사람에게 받은 기록이여야 승낙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작업은 실제로 진행됐고 그해 가을 공사는 완료됐습니다. 그리고 잔금이 남았습니다.
2023년 11월,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11월 22일 공사대금 청구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원청업체가 본격적으로 다투기 시작한 것은 항소심부터였습니다. 이듬해 4월 항소하면서 다툼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대금이 얼마인지가 아니라, 계약이 존재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항소심에서 오간 네 가지 주장
주장 1. 계약을 맺은 사람은 우리 대리인이 아니다
법원도 그 부분은 원청업체 손을 들어줬습니다. 정씨에게 대리권이 있었다는 주장도,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위임장이 없었고 명함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명함만 확인했다면 권한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청구는 전부 기각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원청업체가 계약을 모른다면 설명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5월부터 8월까지의 입금 내역입니다.
권한 없는 사람이 맺은 계약이라도, 회사가 나중에 그 계약을 인정하면 효력이 생깁니다. 이를 추인이라고 합니다(민법 제130조).
계약서는 약속했다는 서면이고, 입금은 그 약속을 실제로 이행했다는 행동입니다. 서면은 누가 무슨 권한으로 썼는지 다툴 수 있지만, 은행 기록은 다툴 수 없습니다.
당시 제출한 준비서면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피고 회사의 명의로 기성금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피고와 원고의 하도급계약 사실을 피고가 추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도 같았습니다.
위 공사대금 지급을 통하여 피고는 원고와의 이 사건 도급계약을 추인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얼마를 받아야 추인으로 인정되는지 법에 정해진 비율은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73%라는 규모, 넉 달이라는 기간, 그리고 법정관리 중이었다는 정황이 함께 고려됐습니다. 한 번의 소액 입금만으로 같은 결론이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주장 2. 법정관리 중이라 법원 허가가 필요했다
4월 14일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원청업체의 무기였습니다.
법원은 두 가지를 들어 끊었습니다. 공사대금을 지급할 의무를 지는 것은 재산을 처분하는 행위가 아니고, 설령 허가가 필요했더라도 그동안 정상적으로 대금을 받아온 하도급업체는 사정을 몰랐던 거래 상대방(선의의 제3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되돌아왔습니다. 법원은 추인을 인정하면서 법정관리 중이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함께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의 회사가 계약이 맺어진 경위조차 모른 채 넉 달간 돈을 계속 보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계약을 무너뜨리려고 꺼낸 날짜가, 계약을 살리는 근거가 됐습니다.
주장 3. 원도급 금액을 넘을 만큼 과도하다
하도급 금액이 원도급 금액보다 크니 그만큼 깎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기존 업체가 포기한 자리를 급히 메운 공사였다는 사정은 앞에서 본 대로입니다.
법원이 든 기준은 이렇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작성하고 서명한 계약서는 그 내용대로 합의가 있었다고 봅니다. 거기 적힌 금액을 뒤집으려면 상대가 반증을 대야 하는데, 그 문턱이 높습니다. 시세보다 비싸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합의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여야 합니다.
원청업체가 낸 자료는 그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계약이 무효라던 쪽이 같은 자리에서 그 계약의 금액을 깎아달라고 했습니다. 소송에서 여러 주장을 나란히 거는 일 자체는 흔합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권한이 없다며 부정했던 그 계약서가, 결국 감액을 막는 근거가 됐습니다.
주장 4. 누수 보수비 605만원을 대금에서 빼겠다
완공 후 누수가 생겼고 원청업체가 보수비 605만원을 실제로 썼습니다. 그 돈만큼 줄 공사대금에서 빼겠다는 것인데, 법률용어로는 상계라고 합니다.
지출 사실은 다툴 수 없었습니다. 다툴 곳은 원인이었습니다.
누수의 원인이 미장·방수가 아니라 다른 업체의 타일 공사에 있다는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법원은 타일 공사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하여 상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자가 있었느냐가 아니라, 하자의 원인이 누구 공정이냐가 결론을 갈랐습니다.

2025년 5월, 법원이 갈랐습니다
소 제기부터 항소심 선고까지 1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계약서를 쓴 공사의 잔금 2,926만원은 전부 인정됐습니다. 견적서만 오간 추가공사 866만원은 기각됐습니다. 작업을 실제로 했다는 점에는 다툼이 없었지만, 계약서가 없고 원청업체가 체결 사실을 부인해 추인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늦게 준 기간만큼 붙는 이자(지연손해금)가 더해졌습니다. 소송 중에는 상법이 정한 연 6%가, 판결 선고 다음 날부터는 지급을 미룰수록 불리하도록 연 12%가 적용됩니다. 소송비용은 원청업체가 80%를 부담하게 됐습니다.
날짜가 만든 기준선
계약서 있음 + 입금 기록 있음 → 잔금 2,926만원 지급 명령 계약서 없음 + 입금 기록 없음 → 866만원 전액 기각
돈이 오간 만큼만 계약이 살아났습니다.
추가공사 세 건 중 하나라도 별도로 입금이 있었다면 결론이 달랐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결론은 소송이 시작되기 훨씬 전, 견적서를 건네고 작업에 들어가던 현장에서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 계약서를 제대로 안 쓴 제 잘못이죠." 이 사건 하도급업체도 등기부를 떼보지 않았고, 위임장도 받지 않았고, 추가 작업은 견적서만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도 2,926만원이 인정됐습니다. 계약서가 흔들려도 남아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 확인해볼 것
상대 법인 계좌에서 입금된 기록이 있는지. 금액과 시기가 남아 있으면 계약서보다 강할 수 있습니다
추가 작업에 대해 변경계약서나 확인서가 있는지. 견적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약을 맺은 사람의 위임장이 있는지. 명함의 직함은 권한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자 주장이 들어왔다면, 그 하자가 어느 공정에서 비롯됐는지 특정할 자료가 있는지
📎상대 재산을 미리 잡아두려면
📎상대가 재산을 빼돌렸다면
계약서가 없거나 상대가 계약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이라면, 입금 기록·문자·견적서·현장 사진 중 무엇이 증거가 되는지부터 확인해 드립니다.
자료를 정리해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법무법인 이현은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는지 이야기해 주시면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것을 찾아 드립니다.
의뢰인 보호를 위해 일부를 각색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내용과 금액, 비율은 실제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 사용된 이미지 중 일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